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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목사​
윤경원 ​Joshua Yun

담임 목사의 신앙 간증 저는 장로교 고신 측의 보수적인 교회에서 소위 모태 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어렸을 때부터 아무 의심 없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초등학생 때 훌륭한 주일학교 선생님을 만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혼을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분만이 저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시자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을 배웠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아직 어려서 이것이 복음이라는 것과 이를 통해 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중학교 때 혼자 미국 플로리다주의 주니어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제 인생 처음으로 역경이라고 할 만한 어려움에 맞닥뜨렸습니다. 엄격한 규율을 지닌 새로운 학교에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의사소통도 되지 않아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었기에 너무 힘들 때면 공중전화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내가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지만 지금은 너와 함께 있어줄 수 없어 안타깝구나. 그러나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 분이 계시는데 바로 하나님이시란다. 그분은 너와 늘 함께 계시니, 힘든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털어놓아 보거라.” 하고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주일 학교에서 배워 온 하나님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진리가 그때만큼 크게 와 닿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 좋은 아침입니다!” 하고 인사하며, 옷을 입을 때도 “하나님, 오늘은 무슨 옷을 입으면 좋을까요?” 하고 묻곤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눈앞에 대면하듯 살아 계신 인격체로 믿고 소통하며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쁨과 힘이 되어 주셨고 어린 나이에 힘든 타국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후에도 플로리다, 뉴욕, 하와이를 거쳐 대학생이 될 때까지 원어민들과 생활하며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영어를 배우게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진로를 결정할 때쯤 저는 어머니의 바람에 따라 국제변호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하와이 주립대학에 진학하였지만 1년 정도 지나자 그 일이 하나님께 정말 가치 있는 일일까라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물론 국제변호사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한인감리교회 목사님께서 제게 감리교신학대학을 추천해 주셨기에 저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감리교신학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면 성경을 잘 알고 훌륭한 사역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입학한 신학교는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인문학, 철학, 인권 교육, 꿈 해몽, 북한의 이해 등의 수업은 있었지만 로마서, 창세기, 요한계시록 등 성경 수업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은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며 술을 권했고, 신상을 묻는 질문 다음으로 처음 들은 진지한 질문은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느냐?”였습니다. 이에 제가 당연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자 비웃으며 사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쓴 고문서라고 했습니다. 수업 중에 교수님께 들은 첫마디 중 하나는 “유관순 열사께서도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으셨는데 예수는 왜 죽기 싫어서 질질 짰냐?”라고 나의 주님을 비아냥거리는 것이었고, 다른 교수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존재도 하지 않는 Q 문서를 보고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경외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에 지식이 부족했던 제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던 것은 “신학과 신앙은 다르다.”라고 애써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제 믿음은 그렇게 파괴되어 갔습니다. 신학교를 2년 다니고 난 후에 저는 군 입대를 앞두고 상한 마음으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싶습니다. 입대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알려주십시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넘치게 응답해주셨습니다. 훈련소에 간 저는 2년간 하나님과 데이트한다는 심정으로 틈틈이 포켓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무실에 저처럼 성경을 읽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생이라고 하자 그 형제도 자신이 독립침례교회 소속의 신학생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형제가 가진 성경은 한국어로 번역된 킹제임스성경이었고 저에게 킹제임스성경과 개역성경의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개역성경이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성경 위에는 감히 어떤 물건도 올려놓지 않았던 저에게는 개역성경에서 구절들이 통째로 삭제되어 “없음”으로 표기된 것과 교리적으로 중요한 단어들이 삭제되어 있는 것이 그 자체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5주간의 훈련 기간이 끝난 후에 각자 다른 자대를 배치받고 헤어질 무렵 그 형제는 저의 부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킹제임스성경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자대에서는 예상치 못한 고난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자대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부대에 최고참 선임이 제게 주일에 교회 가지 말고 청소나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신학생이라서 하나님께 꼭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선임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심지어 그 선임은 제 앞에서 하나님을 조롱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때는 저도 젊은 혈기에 “하나님을 저주하지 마십시오.”라고 맞받아쳤습니다. 그러자 그 선임이 흥분하며 앞으로 절대 교회를 갈 수 없을 거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저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최고참 선임은 정말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 하는지 보겠다면서 자기 밑에 있는 후임들을 전부 불러 모아 놓고 매일 저에게 욕을 하면서 괴롭히라고 명령했으며, 앞으로는 모든 휴식 시간 때마다 벽만 보고 있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부터 선임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체로 몰려와 돌아가면서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밤에 제가 자고 있으면 일부러 지나가다가 뺨을 때렸고 자유 시간에는 벽만 쳐다보고 서 있게 했습니다. 자주 대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제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또 참았습니다. 제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 시간은 화장실에 가서 10분간 포켓성경을 읽다가 나오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시편을 읽을 때면 그 말씀이 너무나 생생하여 눈물이 앞을 가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야간에 보초를 설 때면 하늘을 바라보며 마치 목마른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해 하듯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당시에 제가 하나님께 드렸던 주요 기도는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3개월이 지날 무렵 계속되는 박해에 하루는 마음이 너무 지쳐서 “하나님, 이제는 더 이상 못 견디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토로했습니다. 그러고는 믿음이 적었던 저는 만일 다음 날에도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 제 손을 망치로 내리쳐서라도 여기서 빠져나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제 한계를 아셨습니다. 바로 다음 날 누군가의 고발로 대대장님이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되셨고 곧 포병단장님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대는 발칵 뒤집혔고 선임들은 줄줄이 영창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대장님은 저를 따로 불러 혹시 이 선임들을 용서해줄 수 있겠냐고 하셨습니다.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기독교인이셨던 대대장님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그렇게 해줄 수는 없겠냐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용서해달라는 말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용서하기로 했고, 선임들은 저의 중재로 영창을 면했습니다. 대대장님과 단장님은 저에게 ‘군종병’이라는 새로운 보직을 주셨습니다. 군종병은 부대 내에 있는 교회를 돌보고 예배를 돕는 보직인데, 저희 부대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군종병은 물론 군목의 편제도 없어 일주일에 한 번 주일마다 외부에서 다른 교회 목사님이 와서 설교하고 가셨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비어 있는 교회에서 아침에 청소만 하면 거의 8시간을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저의 간절한 기도에 경청해 주셔서 악을 선으로 바꿔 주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대할 때까지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국어 성경을 여러 차례 읽으며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때 킹제임스성경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진영의 책들을 비교해가며 사본학과 교회사와 성경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었습니다. 성경과 함께 다양한 서적들을 읽으면서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항상 성경을 읽을 때면 한 단어 한 단어 밑줄 쳐 가면서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국어 성경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생겼는데 한국어로 된 킹제임스성경이 영어킹제임스성경과 다르게 번역된 부분이 보일 때마다 표시해 두고 따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제대한 뒤에는 스스로 구원을 다시 점검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이미 받은 상태였지만, 구원의 확신을 위하여 복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한 다음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때가 2009년 1월 17일입니다. 제대 후에 저는 감리교신학대학을 그만두고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독립침례교회로 적을 옮겨 신학을 다시 공부하며 기독교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약 10년 동안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전도를 하는 일의 귀중함을 깊이 공감하여 일주일에 세 번 씩 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공휴일이나 연휴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복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교사라는 특징을 이용하여 방학 때에는 중국 연변, 솔로몬제도, 필리핀, 하와이 등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는데, 특히 필리핀에 방문했을 때는 복음 전도자의 필요성과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선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선교의 부담을 주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여러 달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증거를 노트에 하나씩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어느덧 20페이지 이상이 되었을 때 저는 변명의 여지없이 하나님께서 저를 선교로 부르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담감에 따라 아내와 함께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필리핀에 도착하였고 자비량으로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거리와 공원과 집집마다 복음을 전하며 한 명씩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6개월 만에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고, 이 교회를 통해 킹제임스성경으로 매주 세 번씩 말씀을 선포하고 성경 공부를 가르칠 수 있었고 신학교를 세워 일주일에 열 과목 이상의 성경 과목들을 가르치며 킹제임스성경의 구절 하나하나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알아 갔습니다. 그러면서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미국 설교자들의 다양한 설교들과 주석들을 더욱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약 4년이 넘는 선교 사역 동안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시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양한 학교들에서 수백 명에서 때론 천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셨고, 감옥과 경찰서와 장례식과 여러 교회들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특히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정부의 허락을 받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손소독제를 제공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있던 따기그(Taguig)시의 거의 모든 동네를 집집마다 방문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과 함께 약 1년 동안 1만 명 이상의 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강제 봉쇄를 실시하고 마스크를 안 쓴다고 정부에서 사람들을 유치장에 집어넣으며 교회의 문을 강제적으로 닫게 했던 시기에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심심찮게 한국에서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충들이 제게 들려왔습니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잘못된 믿음과 정확하지 않은 번역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용들이었는데 심지어 어떤 번역자는 킹제임스성경이 영감으로 주어진 것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고, 어떤 번역자는 성경을 독점하며 자기 집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사용하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2007년부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 영어킹제임스성경을 읽으면서 한국어 성경들과의 차이점들을 기록해두고 바른 번역들을 적어두었던 저에게는 개역성경은 물론이거니와 킹제임스성경에서 번역했다는 성경들까지 최소 1만 군데 이상 의도적으로 삭제되었단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심각한 오역들과 바른 번역 원칙들의 부재, 고유명사 문제, 도량형 문제, 수동태를 무시한 번역으로 인한 오류들, 단복수 문제, 성별(남성, 여성, 중성)을 무시한 문제, 기계적 번역의 문제, 차별성의 문제, 일관성 결여 등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2007년부터 해왔던 번역을 기반으로 2019년도부터 더욱 본격적으로 킹제임스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과 성경 출간에 대한 확신을 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필리핀으로 처음 사역하러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증거들을 보여 주시며 저를 성경 번역으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제야 저는 그동안 제가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배우고, 영어 전공을 하며, 영어 교사를 하고, 킹제임스성경으로 영어 사역을 하게 해주신 것이 모두 성경 번역을 위한 초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를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푸시어 미천한 저의 인생을 인도하시고 성경을 번역하게 해주셨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후에 저는 하나님의 인도로 미국에서 “역사적인 예언들로 입증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The Absolute Authority of the Bible Proven by Historical Prophecies)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미국에 있으며 스무 개가 넘는 미국 교회들에서 설교하며 사역을 소개할 수 있었는데, 그때 바이블빌리버(Bible Believers) 목사님들이 저의 사역과 간증과 비전을 보시고는 플로리다에 있는 바이블빌리버 침례교회 (Bible Believers Baptist Church)에 모여 저에게 목사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킹제임스성경을 수호하는 믿음의 사람들인 William P. Grady, Gail Riplinger, David Daniels, Rick Jones, Kevin Mann, Joseph Dulmage, Kyle Stephens, Rick Schworer, Andrew Sluder 등과 Bible Baptist Bookstore, Chick Publication 등 미국 내 킹제임스성경을 수호하는 출판사들이 한국에서의 사역의 중요성에 공감해주었고 그들의 서적을 출판할 수 있는 출판권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다양한 방법과 경로를 통해서 성경 번역 사역을 지지해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보여주신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들은 지면이 부족하여 모두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한 나라의 모국어로 표준이 될 수 있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열정과 그분의 은혜가 결국 을 완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현재 상당히 진행된 을 출간할 것입니다. 단순히 누군가의 견해에 따라 달라지는 번역이 아니라,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가 어떤 문맥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영영사전과 상호참조체계와 성경내장사전을 이용해 정리하여 더 이상 성경에 대한 혼란 없이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표준이 될 수 있도록 사전을 만들어 제시할 생각입니다. 저는 또 다른 킹제임스성경의 번역본을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가장 정확한 성경을 만들어 더 이상의 혼란 없이 한국에서 표준이 될 수 있는 킹제임스성경을 출간하는 것이며, 둘째는 교파나 개인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성경을 만들어 더 이상 성경의 외적인 문제로 인하여 성경의 빛이 제지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제 일생에 주신 하나님의 사명 중 하나임을 굳게 확신합니다.

약력

미국 플로리다 주니어 공군사관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 M.B.A. 경영학 석사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미국 애슈빌 침례교 신학원 신학 학사 (Bachelor of Theology)

미국 애슈빌 침례교 신학원 신학 석사 (Master of Theology)

​미국 플로리다 바이블빌리버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

미국 베다니 신학대학원 신학 박사 (Doctor of Theological Studies) 

- “역사적 예언들로 입증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 (The Absolute Authority of the Bible Proven by Historical Prophecies) 논문으로 미국 현지에서 신학 박사 학위 취득.

 

해외 선교 [필리핀] (2018-2022)

바이블빌리버 국제 침례교회 담임 목사 (2018-2022)

킹스워즈신학원 학장 (2018-현재)
갈보리침례교회 담임 목사 (202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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